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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판교 통일신라무덤과 고려시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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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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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통일신라·고려시대 무덤]

 

지정번호: 성남시향토문화재 제12

소재지: 백현동 423 낙생 대공원 내 유적지

 

낙생 대공원에 이전 복원된 석곽묘, 석실묘, 토광묘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고분으로 비정되며, 앞트기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등 다양한 무덤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백현동(현 지역난방공사 일대)의 통일신라시대 1호 석실묘는 해발 약 80m의 평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존 집터를 파괴하고 만들어져 있다.

 

백현동의 통일신라시대 2호 돌방무덤은 해발 약 74m의 평탄면에 기존 구덩이 유구 일부를 파괴하고 만들어져 있다. 동쪽과 서쪽의 순으로 두 차례에 걸쳐 주검받침을 만들었는데, 이 중 두 번째 주검받침 중앙에서 금속허리띠장식 4점이 발견되었고, 껴묻거리로 대부병(臺附甁) 1점이 출토되었다.

 

삼평동(현 봇들마을 4·6단지 일대)에서 발굴된 2호 석곽묘는 성남에서 최초로 발견된 앞트기식돌덧무덤으로서 시대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로 추정된다.

 

돌덧널은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하여 북벽 6, 서벽 7, 동벽 6, 남벽 4단으로 만들었고 무덤 내 주검받침은 바닥 전체에 15~25cm 크기의 납작한 돌을 사용하였다. 북벽과 동·서벽을 먼저 쌓고 남쪽 방향에서 시신을 안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안치한 다음 남벽을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송동(현 봇들마을 2단지 일대)3호 석곽묘는 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 현재 덮개돌은 남아있지 않다.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의 것으로 돌덧널 안의 주검받침에서는 청동허리띠장식 조각이 발견되었다.

 

백현동의 방형구획묘는 크게 중앙의 토광묘, 토광묘를 둘러싼 방형 담장 시설, 담장 동쪽의 석렬 유구로 구성되어 있다. 토광묘는 길이 270cm, 너비 140cm, 깊이 240cm로 남쪽 벽 내부에서 감실이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고려백자, 청자, 동전, 청동수저 등의 껴묻거리와 바닥에서 인골 1, 인골 허리부분에서 족집게와 귀이개가 함께 출토되었다.

 

동서 760cm, 남북 560cm 크기의 담장시설은 중앙 묘광을 중심으로 장방형 형태이며 폭 80cm3단 정도가 확인된다.

 

담장시설의 전면에는 소규모의 석축시설이 위치하며 중앙 상부에 상돌을 놓은 흔적과 향로석이 발견된 점이 특이할 만하다.

 

담장시설과 함께 묘역을 형성하고 있는 석렬 유구는 남쪽과 북쪽이 담장시설과 맞닿아 외곽에 면을 맞추어 1단으로 쌓아 만들었다.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이중 특히 삼평동과 사송동의 석곽묘, 판교동의 석실묘 등 통일신라기 유적군은 중원구 도촌동 유적이나 여수지구 유적, 광주 남한산성 유적과 연계하여 추론할 경우 삼국통일시기 한반도 내 성남 및 인접지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성남지역의 중세 고분 문화를 보여 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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