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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낙생역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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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1-1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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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지역은 옛날에 낙생행궁, 낙생역, 판교역 등이 위치하고 있어서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교통로였다.

 

특히 양재역과 낙생역을 잇는 길은 한양과 부산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 도로는 충청, 전라, 경상도의 진상품이 올라오고 외국 사신들이 왕래하는 주요 대로 중 하나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포로가 되었던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가 머무른 곳이고 1811년의 마지막 조선통신사 일행 350여명이 판교참을 이용하였다.

 

현재 잡월드 주변에 궁내동이라는 지명이 있게 된 것은 바로 임금이 머물던 낙생행궁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실은 성종8년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국왕의 지방행차는 행차 목적에 따라서 선대 왕릉을 참배하기 위한 능행 행차, 휴식을 취하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휴양 행차, 사냥과 군사훈련을 위한 행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성남의 낙생행궁은 온천 행차와 군사훈련 행차 때 사용된 것이다.

 

현재 낙생역 터와 낙생행궁, 낙생장터는 성남시 분당구 잡월드 앞 일대로 추정된다. 행궁이 있고 그 주변으로 낙생역과 장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궁안 마을이라고 부르고 한문으로는 궁내동이라고 쓰게 되었다.

 

과거에 이 지역이 광주군 낙생면이었던 것과 낙생행궁, 낙생역, 낙생장터라는 지명이 모두 관련되어 있으며, 지금도 원주민들은 백현동을 낙생말(낙생마을)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 뒷산을 낙생대공원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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