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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미 지명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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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1-1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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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성내미) 지명 유래]

 

풍수지리는 우리나라의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 지리학으로 시대별 왕조의 교체기나 중요한 국책사업에는 반드시 풍수지리학의 검증을 받아야 했다.

 

역대 왕조의 도읍을 정하는 것과 궁궐의 위치를 정하는 데에도 정밀한 검토를 거쳐 결정하였다. 심지어는 과학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풍수학자 중에는 조선 개국 초기에 최양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늘날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달래내고개인 천천현길을 막고 통행을 금지하고자 주장했던 사람이다. 또한 세종의 영릉을 처음에 태종의 능인 헌릉 앞에다 자리 잡을 때 극렬히 반대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이야기다. 196821일 달래내고개에서 착공식을 가지고 건설공사에 육군 1201건설공병단 제220대대가 차출되었는데 52일 후인 323일 이곳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였다. 달래내고개에는 달아와 달오 남매를 신으로 모신 서낭당이 있었다.

 

당시 불도저 운전병인 한모 상병의 꿈에 서낭당 신이 나타나서 이사를 할 수 있게 사흘만 시간을 달라고 했으나,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병사의 입장에서는 어떨 수 없이 공사를 진행하던 중 평지인데도 불도저가 넘어져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77명의 희생자를 내고 197077일에 개통하였다.

 

20121122일 오전 1145분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달래내고개에서 13중 추돌 사고로 2명이 죽고 14명이 다친 사고가 있었다. 지리학 최양선이 고개를 막고 성을 쌓고 길을 폐지하자고 주장한 기록이 있었다.

 

최양선이 천천현길을 막도록 주장한 이유는 고갯길에 흙이 깍여 나가고 파이는 것이 매우 불길하다는 것이었다.

 

세종 때부터 폐쇄 논의가 있었던 이 고개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 세종 20년에 고갯길에 흙을 북돋우고 토성을 쌓아 한 때 길을 폐쇄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헌릉의 주산에서 내려오는 지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로써 그 남쪽인 판교 인터체인지 부근에 성내미 마을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날 남한산성의 남쪽이라는 뜻보다 600년 앞서 이 지역에 성의 남쪽이라고 하는 토속 발음인 성냄이, 혹은 성내미 마을이 지금까지 불리워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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