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은 숯 굽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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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1-24 14:05본문
[성남은 숯 굽던 마을]
탄천은 이 지역에서 숯을 굽는 동네인 숯골이 있었기 때문에 숯내라고도 하고 한문으로는 탄천이라고 하였다. 숯골은 한문으로 탄동(炭洞)이라도도 쓰고, 남한산성 주변에는 광주 쪽에 탄벌리가 있다. 그리고 분당의 수내동 지명 유래도 숲안이라고도 하고 숯내라고도 한다.
김종직(1431~1492)은 현 송파구 마천동 부근에서, “마천에서 바라본 바를 기록한다”고 하며 시를 남겼다.
<<마천에서 본 바를 기록하다>>
말방울 울리며 마천을 들어가노니
궁중 나인들 또한 빠르기도 하여라
그늘진 구렁엔 얼음이 얼려 하고
양지쪽 벼랑엔 단풍이 아직 곱구나
중의 방은 겨우 십홀 쯤 되고
마을 이름은 천 년이나 내려온 듯
난초가 깔려있어 길은 미끄럽고
괴석이 달려 있어 봉우리는 위태롭네
눈은 신모의 사당을 덮었고
천둥소리는 칩룡연에서 울리누나
굽은 언덕엔 고기 어리가 남아 있고
숲 우거진 사당엔 지전(종이돈)이 걸려 있네
나무를 깍아서 계곡엔 자귓밥이 있고
숯을 굽느라 골짝엔 연기가 나네
일하는 사람은 메밀을 베고
작은 색시는 목화를 거두누나
농사를 묻고 이어 위로하고서
말 재촉하여 물 따라 배회하노라
그럭저럭 임기가 가까워졌으니
이 놀이를 뒤에 응당 그리워하리
시의 내용 속에 “숯을 굽느라 골짜기에서는 연기가 난다”고 하였으니, 남한산성을 둘러싼 주변 마을은 숯을 굽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태평동 일대를 숯골이라 하였고, 남한산성 동문 밖으로는 탄벌(炭垡)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한양 궁궐에 숯을 납품하거나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 전쟁에 대비하여 24,192석의 숯을 구워 묻기도 한 것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