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묘비 거북 받침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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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1 10:59본문
[이경민 묘비 거북 받침의 내력]
이경민(1578~1652)은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 자는 여은, 호는 양촌이다. 고등동 산37-1번지에 묘소가 있는데 비석의 받침돌이 매우 독특한 거북이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경민은 한참 공부할 시기인 15세 때, 임진왜란이 터져 공부할 시기를 놓쳐 늦게야 공부를 시작하여 1613년(광해군 5년)에 진사가 되었다.
1617년(광해군 9년)에는 인왕산 아래 성첩과 담장 밖 집을 짓는 공사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아 책임을 완수하였다.
1652년(효종 3년) 7월 9일에 임금이 세상을 뜨자 고등동의 덕수 이씨 선영 남쪽 기슭에 장사를 지내고, 여러 차례 증직을 받아 의정부 좌의정에 이르렀다. 문장과 글씨가 능하여 비문과 묘지명은 도맡아 하였다.
이경민에게는 자녀가 13남 2녀로, 그 자손이 매우 번창하였다. 그를 낳은 아버지가 이통인데 이적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이경민의 아버지가 흡곡 현령 재임 시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온몸에 식은 땀을 흘리며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경민을 불러 등을 긁게 하고는 “꿈에 다섯 마리의 거북이가 반송방 옛 집터의 고목 아래에서 나오더니 순서대로 내 다섯 발가락을 삼켰단다. 그런데 그 중에 두 번째 발가락을 삼킨 거북꼬리의 크고 작은 비늘이 차례로 이어지더니 온 집안에 가득 차는게 아니더냐! 그래서 황홀한 나머지 깜빡 놀라 일어났단다. 내 듣자 하니 거불기는 자손을 상징한다는구나, 이를 통해 너희 형제 중에 네가 응당 커다란 경사를 맞이하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경민 묘갈>
이경민의 비석을 세울 때 비석의 받침을 특이하게 귀부를 사용하였는바, 이는 성남지역에서 이경민 묘소가 유일하고, 꿈 이야기를 비석 모양에 나타낸 것은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성남시향토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