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에 충실했던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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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1 11:02본문
[원칙에 충실했던 이경민]
광해군 때 <대전(大典)>을 논의하는 자리에 선공감 직장 이경민을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 이에 이조에서 이경민의 잘못을 조사하자고 건의했는데 광해군이 “이경민은 담장 밖의 집을 짓는 곳의 공사를 자리를 뜨지 않고 감독하고 있으니 조사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경민이 맡은 선공감의 직무가 궁궐에 필요한 토목, 각종 수리, 물품의 조달 등을 맡은 기관이었는데 이경민은 자기가 맡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고 감독했던 것이다.
이경민이 의성현령으로 있을 때(1624년) 이황의 후손 이유도가 도선서원 원장으로서 관의 명령을 어기고 부역에 응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이경민은 이것을 지방토호와 유력자들이 사림으로 행세하며 수령을 능멸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잡아다 재판을 하던 중에 이유도가 관찰사를 모욕하는 말을 하자 경상감사 원탁에게 보고하고 10대 미만의 곤장을 때렸는데, 그만 죽어버렸다.
그러자 그 향리의 족당들이 떼를 지어 관아를 둘러싸고 사또를 위협하고는 드디어 형벌을 담당한 관리를 묶어 갔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봉과 이암이 격쟁(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하여 원통함을 호소하고, 친척인 이홍중에게 부탁하여 도산서원 원생들과 여러 고을에 통문을 돌렸는데, 그 내용은 관찰사를 비난하는 것이었다.(1626년 6월 26일)
일이 이렇게 확대되자, 사헌부에서는 시체를 검사하는 한편, 지나치게 형벌을 가한 책임을 물어 경상감사 원탁과 의성현령 이경민의 잘못을 문책하도록 하고, 이홍중은 신문하여 세 차례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의 정언 최혜길은 이 일을 수차에 걸쳐 임금에게 고하였는데, 그 말 중에 ‘마음대로 죽였다’, ‘억울하게 죽었다’, ‘멋대로 죽이는 수령’ 등은 이경민을 가리키는 말로써 당시 장령 이경헌은 자신의 직책을 바꾸어주기를 요청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경민이 자신의 친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인조가 말하길 “경상감사 원탁은 형벌로 인해 목숨을 잃게 하였으니 참으로 잘못이 있지만, 이유도의 소행 역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지고 매우 흉악하다. 지금 만약 이로 인하여 경상감사에게 죄를 준다면, 영남의 사나운 습관을 징계하여 제압하기 어려울 듯하다. 사건에 대한 서면 진술서를 보아가며 처리할 것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하였다.
그리고 특명으로 최혜길을 송화현감으로 좌천시켰다. 이것은 정언으로 있을 때, 이유도의 일을 경계하며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편파적으로 공격한다고 하여 외직으로 좌천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근고에 없었던 변으로, 설혹 죄없이 죽었다 하더라도 해당 관사에 고소하여 억울하고 잘못된 점을 폭로하라는 국법이 있는데도 사사로이 무리를 모아 관원을 잡아갔으니, 이는 나라의 명을 받은 관리를 무시하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꺼리는 바가 없는 것이니, 국위가 존엄하지 못해 나라꼴이 되닞 못할 것을 경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