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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류 선생과 애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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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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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류 선생과 애마총]

 

임진왜란 때 상주전투에서 홍문관 교리 박지와 윤섬(1561~1592), 병조좌랑 이경류(1564~1592) 3명의 종사관이 전사하였다.

 

문관 종사관은 직접 전투에 나가는 직책이 아닌데도 이 세 사람은 직접 전투에 임하여 목숨까지 잃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불쌍히 여기고 애도하였다.

 

이경류가 전사하자 그의 애마가 그의 피 묻은 옷을 물고 지금의 성남 분당 중앙공원 부근에 있던 한산 이씨 마을, 선생의 집으로 달려왔다.

 

500리 길을 달려온 애마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 죽음으로써 주인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이경류 묘 바로 아래에 애마총이 있다. 충신정려문이 중앙공원에 전해온다.

 

정조 16(1792)에 삼종사관이 싸우다 죽은 곳에 충신의사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임금이 지은 제문에 이르기를 병조 좌랑(이경류)으로 말하자면, 나가서 형을 대신하였고, 직학사와 더불어 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명성을 드날렸네. 세 사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칼을 잡고 소매를 떨쳐서, 죽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니 누가 개돼지처럼 구차히 살 것인가하고는 붉은 마음을 열어젖히고 분연히 나아가 벽혈(碧血)로 화하여 죽었네라고 칭송하였다.

 

<충신의사단 치제문(忠臣義士檀 致祭文)>

정조대왕 <흥재전서 제23> 제문

출처: 국가고전번역원

 

임진년의 전역에

영남에서 가장 먼저 왜구가 날뛰어

부산을 베고 동래를 무너뜨리니

사졸과 말들이 모두 지쳐 쓰러졌네

이에 원수를 명하여

병풍처럼 둘러서 방어하게 하니

시정의 무뢰배들이

겨우 백 명 정도 모여들었네

사벌의 들판과

증수의 물가에

적진이 구름처럼 사방으로 막으니

초목이 빛에 가려져 어두웠네

정 나라 성문은 굳게 닫힌 채 꼼짝하지 않고

송 나라 병사는 몰래 병기를 끌고 달아났는데

오직 세 사람의 종사는

몸으로써 싸우다 죽기를 맹세했네

, 문열공이여

그 노고가 혁혁하여

은 나라 설 주 나라 직과 같았으니

우리의 종계를 바르게 하였도다

나라를 빛나게 함에 경사를 표시하여

그대에게 공신의 녹권을 내렸네

병조 좌랑으로 말하자면

나가서 형을 대신하였고

직학사와 더불어

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명성을 드날렸네

세 사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칼을 잡고 소매를 떨쳐서

죽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니

무가 개돼지처럼 구차히 살 것인가 하고는

붉은 마음을 열어젖히고 분연히 나아기

벽혈로 화하여 죽었네

먼저 이러한 충의를 일으키자

팔방에서 다투어 일어나니

돌아보건대 나의 감개와 흠앙에

광세의 느낌이 없을 수 없네

재단의 이름이 아름다운데

충의를 떨친 날 제사를 드리니

의로운 기운 산하가 되어

남쪽 지방을 길이 보위하기 바라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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