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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도리장과 판교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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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1-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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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 도리장과 판교역]

 

판교의 낙생에는 국왕이 군사훈련 때 머물던 낙생행궁이 존재하였고, 구석기 시대부터 백제시대 고분과 고구려식 고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적이 연속으로 분포하고 있다.

 

판교는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중요 교통로로서 판교역과 판교원이 있어서 평화시에는 서울과 지방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쉼터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때에는 중요한 길목을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함경도에서 왜군의 포로가 된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가 오랜 억류 생활 끝에 풀려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머무르기도 하였을 뿐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오는 사신이 머무르기도 하였던 곳이다.

 

조선이 건국하고 서울의 성을 쌓을 때의 일이다.

전라도 진원군 백성의 딸 도리장이라는 효녀가 있었다. 도리장은 그의 아버지가 서울로 성 쌓는 일에 불려갔다가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면서 하는 말이, “나에게는 아무 형제도 없으니 내가 가서 보아야 혹시나 살아 돌아오실 것이다하고 남자로 변장하고 곧장 길을 떠났는데 길가에서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꼭 들어가서 보았다.

 

마침내 판교역(판교원)에 이르러 그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병이 위태하므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고 치료하여 부축하고 돌아오니, 고향에서 효녀라고 칭찬했다.

 

이 소문이 조정에까지 들리게 되어 도리장에게 면포(綿布)를 내려 주었다.

 

이 이야기는 태조실록 5(1396) 34일 기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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