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의 명인 이효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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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6 23:24본문
[활쏘기의 명인 이효백]
신종군 이효백(1433~1487)은 활쏘기의 명인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희삼(希參), 시호 공간공(恭簡公)이다.
정조대왕의 열 번째 아들인 덕천군 이후생의 아들이고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장군의 외손자이다.
궁술이 비상하여 1459년(세조 5년)에 임금이 직접 참가한 모화관의 시사(試射)에서 모두 30발 중 29발을 과녁에 명중시킨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세조의 특명으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정의대부(正議大夫:종2품 종친계)에 오르고 1467년(세조 13년) 신종군(新宗君)에 봉하여졌다. 같은 해에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세조가 친정(親征)을 떠날 때 선봉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듬해에는 무과에 급제하여 품계를 더하였다. 종친(宗親)은 전례에 따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지만, 세조가 그해부터 특별히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예종이 즉위한 후에는 임금의 명으로 착호갑사(捉虎甲士)와 겸사복을 거느리고 광주 일대에 출몰하는 호랑이를 잡아 민심을 안정시켰다.
아우인 효숙, 효성, 효창과 함께 4형제가 모두 활을 잘 쏘았다.
이효백은 풍수지리에도 밝았는데 현재 그의 묘 자리는 자신이 직접 정한 곳이라 한다. 어느 날 사냥을 하다가 갓에 달린 옥관자가 떨어져 없어졌는데, 훗날 그가 죽은 후 묘 자리를 쓰려고 할 때 그 옥관자가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