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이 뛰어났던 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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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2-01 11:05본문
[무술이 뛰어났던 이함]
이함(1470~1534)은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 덕수, 자는 자실, 시호 해풍군이며 풍성군 이의번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용맹스럽고 활쏘기에 능하였으며 20세에 무재로 뽑혀서 궁중을 수비하는 장교가 되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이 즉위하는데 공을 세웠다.
1524년(중종 19년) 북쪽의 오랑캐들이 여연 등 세 고을에 들어와 살고 부락이 번창하니 그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러나 적들이 군사를 매복시켜 그를 포위하고 공격함으로 싸움이 붙어 싸울 때, 그는 적 3인을 쏘아 말에서 떨어뜨리고, 넷째 화살을 쏘려다가 유시에 맞아 쏘지 못하고 말을 돌려 피하다 적이 뒤에서 칼로 그를 쳐서 귀 뒤를 다쳤다.
이어 급하게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오는데 큰 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말에 채찍을 가해서 뛰어 넘어 왔으나 적이 이곳에 이르러 이를 넘지 못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오히려 적 세 사람을 사로잡아 왔고, 몸도 두어 군데 상처를 입고도 쇠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다.
이때 그는 60의 나이에 다가온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싸운 모습에 대하여 사람들이 놀랍고 뛰어난 재주라고 탄복하였다.
1534년(중종 29년)에 순천부사 재임 중 병으로 나이 65세에 죽으니, 임금이 예조좌랑 김기를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때 임금이 직접 지은 제문에 이르길 “그대의 당당한 재질과 헌걸차고 용맹스런 바탕은 일찍이 궁술과 마술을 익혀서 사람들이 그 무략을 받들었다. 나라가 한 때 불운을 만나서 임금을 새로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공적이 있었음은 산하를 두고 맹서한 것이어서 그 이름이 충훈부에 올랐도다, 무릇 오래도록 장수를 하였으며 영안하고 순박한 복을 누리도다”하였다.
이함은 불천지위의 명을 받았다. 고등동(등자리) 산13번지에 묘소가 있다. 불천지위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