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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 박사가 들려주는 성남 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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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7-10-2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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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 (세종대학교 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남문화원 부설 성남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성남문화의집 관장, 성남지역에 대한 역사 연구 중)



강정일당 (姜靜一堂,1772~1832)은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 본관은 진주, 정일당은 당호이다.

어릴 적 이름은 지덕으로 "여기 지극한 덕을 갖춘 사람이 있으니 네게 부탁한다"는 어머니의 태몽에서 따온 것이다. 어릴적부터 성품이 정정단일하고 희로애락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문밖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려 놀기를 삼가 조심하는 등 남다른 모습을 보였고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누구보다도 뛰어난 여공 (女工) 솜씨를 지녀서 모든 어른들로부터 천인과 같은 아이라는 칭찬의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


부모가 병이 들면 옷도 벗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약과 음식에 정성을 다하였고 어머니의 바느질과 길쌈을 밤새워 도왔다. 여덟살때부터 '시경', '예기' 등에 나오는 경전 구절을 배웠다. 당시 여자에게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던 당시의 관행으로 보면 예외적일 만큼 문학적 소양과 재덕을 겸비했음을 알 수 있다. 정일당은 20살때 6살 아래인 충주의 선비 탄재 윤광연과 결혼한다. 하지만 집이 가난하여 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남편을 도와 함께 공부하였다.


이후 18년 동안 모신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정일당은 더욱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며 온갖 궂은 일을 감당하게 된다. 더구나 5남 4녀라는 자녀를 모두 어린 나이에 잃는 애통한 슬픔을 당하고 양자를 들였다. 그러나 정일당은 의연했다. "일찍 죽고 오래 사는 것은 자기 분수에 정해져 있으니 근심할 바가 못 됩니다. 다만 근심되는 것은 자기 도리를 스스로 다할 수 없는데 있으니 무엇을 원망하며 허물하겠습니까?"라며 슬픔을 극복했다.


정일당은 남편의 학문에 대한 점검과 채근도 자주 했다. 남편 윤광영도 정일당의 조언을 반발없이 수용했으니 그 역시 당시의 보통 남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던 것이다.


정일당는 궁핍한 살림을 검소하게 하면서 저축에도 힘써 후에 상당한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에 서울로 이사하여 남대문 밖의 약현에 살때는 남편의 호를 따서 지은 탄원이라 명명한 정원이 딸린 넓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며 청계산 동쪽 넓은 산을 선조들의 위토로 사서 3대 조상의 묘소를 새로 옮겨 단장하기도 했다.


성남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수정구 금토동 산자락 묘역 전체가 모두 정일당이 살아 있을 때에 마련한 선영으로 자신의 묘소도 이곳에 있으며 여성으로는 드물게 추모 사당도 지어져 있다.


정일당유고에는 시 38수, 명 5편, 서 10편, 기 3편과 묘지명, 행장 등 정일당이 생전에 추구하고 쓴 글들이 오롯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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