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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친 충절, 삼세삼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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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9-01-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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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친 충절, 삼세삼충]

 

청계산에는 고려말의 충신 송산 조견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수 전해온다.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0번지에는 성남시향토문화재 제3호인 송산 조견의 묘역이 있고, 그 맞은 편 언덕에는 둘째 아들인 조철산의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4)

 

고려 말 100여 년 동안 무신들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다가 몽고의 침입으로 간섭을 받게 되었다.

 

이 시기에 조인규라는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그는 몽고의 통역관 출신으로 최고의 관직에 오르며 고려와 몽고 사이의 어려운 외교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에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그의 증손 조준은 이성계 등의 신흥 무장세력과 지식계층인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고려 말의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성계가 권력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 데에는 조준에 의해 주도된 토지제도의 개혁이 큰 힘이 되었다.

 

조견은 조준의 아우였지만 형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는 고려와 조선의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연려실기술>같은 기록에는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고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조견은 아들들의 이름을 석산(石山), 철산(鐵山), 수산(壽山)으로 지어 고려에 대한 충정심을 버리지 않고 돌과 쇠처럼 굳은 절개를 지키라는 뜻을 담았다. 또한 후손들에게 조선의 벼슬을 하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둘째 아들 철산은 태종· 세종 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조견의 장남 석산의 아들들과 철산이 단종 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죽거나 유배되었다.

 

세조2년에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으로 그 해 62일부터 628일까지 사형집행만 8차례 진행되었고, 종묘에 사건 처리를 고한 것이 712일로 40여 일만에 속전속결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 가운데 거열형을 받은 자만해도 41명에 달하였다.

 

연좌제로 어머니, 아내, 누이, 딸이 노비로 전락한 여성이 172, 공신 집에 끌려간 부녀자가 181명이나 되었다.

 

사육신의 난으로 사육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처형되었고 이 일에 집현전 학사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세조는 집현전을 폐지하고 그곳에 있던 서책들을 예문관으로 옮겼다.

 

고려와 조선의 왕조교체기에 조견은 고려의 충신으로 남아 후손인 아들 철산과 손자 청로가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충절을 중시하는 가문의 가풍이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조철산과 부인 이씨의 묘역에는 1468년과 1374년에 조성된 묘비, 문인석, 장명등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묘비는 조성연도가 확실한 가장 이른 시기의 석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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